#프롤로그 & 할리우드 영화
가끔은 참 괜찮은 할리우드 영화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악명 높은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녹아있는 상당한 수준의 지적 사유들을 발견할 때면, 그들 사회 대중의 전반적 지적 역량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됩니다. 매트릭스, 트루먼 쇼 등등. 요즈음은 영화 말고도, “위키피디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각설하고...
#About the Reality
“여러분, 다시 못 볼지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짐 캐리가 주인공인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태어나 30년을 살아온 공간이 TV 프로그램 세트장이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더는 시청자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현실 세계로 연결된 문을 열고 나가면서 이 영화는 끝납니다. 주인공이 세트장의 출구로 연결된 계단의 꼭대기에 서서 시청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인사하는 대목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장면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스튜디오와 같은 것일 지 모른 다는 생각을 저도 20살 언저리까지 했더랬읍니다.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그 절대적 시선을 피하기위해, 속이기 위해 짐케리가 한 것 처럼 저도 걸어가다 갑자기 냅다 뛴다든지, 공연을 며칠 앞두고 연극을 갑자기 그만두다든지 하는 예측되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했었지요. 우리가 주인공 처럼 스튜디오를 벗어날 수없다는 것만 제외하면...쉽게 공감이 가는 그런 영화였읍니다.
#개인과 타자, 그리고 조물주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른사람들과 매우 다른 존재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짐케리나 저의 돌발적 행동은 자신을 타자로 부터 분리하고 그들을 의심하고 관찰하며 객체화하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읍니다. "나는 저들과 다른 존재다. 이 세상은 나라는 주체와 나를 속이기 위해 연기하는 배우들, 즉 타자,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들고 연출하는 지휘자인 조물주 셋으로 이루어져있다. 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나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던 단계에서 "분리된 나"에 대한 자각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나에게만 일어 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는, 특별하다는 그런 인식은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나는 남다른 상황에 있다. 나의 고민은 아무도 이해할 수없는 특별한 것이다. 나는 남들과 겉으로 비슷한체 하지만 진실로 정말 다르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모두, every body!!!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주제가 될 정도로, 모두. TV 커머셜에서 즐겨 사용되는 카피고 될 정도로...나의 고민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 쯤, 타자와 내가 진실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 쯤, 나는 짐케리 놀이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말한면 내속에 타자가 있고 타자 속에 내가 있는 그런 걸 어슴프레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 까요.
파놉티콘
현상과 본질에 대한 관념 철학의 여러 쟁점을 재미있게 풀어낸 "트루만 쇼"는 이 이외에도 현대사회가 배태한 여러 문제를 생각케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상을 창조하는 권력으로서의 미디어"라는 이슈입니다. 그런면에서 영화는 ‘감시 사회(Surveillance Society)’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닮았습니다. 그 주제는 정보사회에서의 ‘권력과 감시’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죠. 다른 점은 오웰이나 푸코가 우리를 지켜보는 ‘빅 브러더’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영화는 한 개인을 감시하는 우리의 문제, 즉 우리가 ‘빅 브러더’라고 얘기한다는 점입니다.
#가역적, 다중의 감시, 시놉티콘
보이지 않는 괴물 같은 소수가 다수인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오웰이나 푸코의 관점보다는 우리 모두가 감시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현대 인터넷 기반 사회에서는 좀 더 현실적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소수에 의한 감시를 의미하는 푸코의 개념 ‘파놉티콘(panopticon)’에 대비해다중이 소수를 감시한다는 뜻의 ‘시놉티콘(synoptic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전자 멀티미디어 네트워크에 기반한 다중의 감시는 권력을 견제하다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면서도 사적인 개인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타임지 선정 2006년 올해의 인물인 ‘당신들’이 어떤 개인에게는 무서운 ‘빅 브러더’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제 유럽의 한 유력 인권단체에서는 “올해의 빅브라더상” 수상자로 “당신들(You)"을 선정한바 도 있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 나훈아 괴담
얼마 전 가수 나훈아의 공개 기자회견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회견 동영상을 직접 찾아보니, 카리스마 넘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과시된 한 편의 ‘나훈아 쇼’였다는 세간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은 한번 보세요. 강추입니다. 쇼 같은 기자회견도 그렇고, 그 기자회견의 원인을 제공한 “괴담”의 내용도 그렇고 또 그 가상적 이야기가 구성되는 과정도 그렇고 하여튼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이벤트였습니다. 개인 또는 연예인들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비슷한 사건들이 사실 많이 있었습니다. NYT 까지 소개했던 개똥녀 사건도 있었고, 연예인들의 경우는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번 것은, 그것이 "나훈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와 달리, 그가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대 들어(?) 관심을 증폭시킨거지요.
#진짜 개인(True Individual)
개구쟁이 이미지의 짐 케리와 성적 매력을 무기로 하는 나훈아를 동시에 연상한다는 것이 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볼 테면 보라고 외치고 카메라 밖으로 비장하게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다가 보니 영화 트루먼 쇼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다중에 의해 만들어지고 길러진, 진짜 아닌 가짜 트루먼(True-Man)이 진짜 자기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나훈아 씨도 그렇게 떠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 겠지요.
#Revisiting "Individuality"
“개인성(Individuality)”에 대한 강조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핵심 독트린입니다.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공적 영역”이란 것도 개인성에 기초한 사적 영역이 보호 될 때 존립 가능하다고 볼 수있읍니다. 21세기 네트워크 사회에서, 그런 “개인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휘태커 같은 사람은 정보화 시대를 ‘개인(성)의 종말’과 연결지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The end of privacy,"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개인성”의 방패막이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가 날로 심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지켜야 한다는 "개인성"이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신화일지도 모르니까요. 옛날과 다름에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변화된 세상에 적합한, 필요한 “개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개인성" 이란 것은 지켜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되고, 도전,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