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담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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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
이번 촛불 시위와 관련해, "표현의 욕구"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규정하고, 묘사, 표현, 전달하려는 욕구,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 설명하려는 욕구, 그런 표현의 욕구 말입니다.
마이크로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저널리즘역시 개인들의 증대된 표현의 욕구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표현의 욕구는 어떤 무의식적 기쁨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보고 나 자신을 보는 기쁨 말입니다. 보여 주고 보여 지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이야 말로 이런 기쁨이 교차하는 네트워크입니다. 내가 본것, 타인이 본것,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 그들의 실시간적이고 초공간적 중첩이 만들어 내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과 자아에 대한 메타텍스트와 메타 의미,
그 시선의 네트워크. 기록의 네트워크, 의미의 네트워크가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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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기쁨
‘보는 기쁨’은 두 가지 무의식적인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관음증과 나르시시즘이 그것인데, 전자는 기쁨의 원천 즉 보는 대상이 남(他)이고 후자는 자기(我)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를 들어 설명하면, 영화관안의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그런 것처럼 연기하는) 극중 인물들의 사적인 면을 훔쳐봄으로써 얻는 것이 관음적 욕구 충족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이와는 달리 영화 속에서 상상의 자신(我)을 발견함으로써 느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이 기쁨은 관객이 영화 속의 연기자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얻어집니다. 두가지 모두 절대자, 절대적 존재로 부터 유리된, 결핍적 존재일 수 박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기반한 욕구이자 기쁨입니다. 시선의 대상인 인간이 시선의 주체인 절대자 노릇을 흉내냄으로서 얻는 기쁨이 "보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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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텔레비젼에 내가 나오면 왜 좋을 까요. 보여지는 기쁨이라고 하겠는데.... 타자의 시선으로 객관화된 자신을 본다는데 기쁨이 있읍니다. 보여진다는 것(또는 그 의식)은 타자의 시선을 빌어 자신을 보는것입니다. 보여지는 기쁨 역시 보는 기쁨인게지요. 보여짐에 대한 의식의 결과가 곧 표현입니다.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리고 나면 게시자 스스로 끊임없이 그것을 보게 됩니다. 표현된 자신인데, 타자화된 자신을 보는 기쁨입니다. 표현은 어쨌든 보여지기 위함입니다. 스스로 보든 남이 보든 말입니다. 표현의 욕구는 보는 기쁨으로 완성되는 거지요.
이런 ‘기쁨’을 손쉽게 제공하는 매체가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의 익명(匿名)성과 차명(借名)성이 관음증과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나와 타자를 표현하려는 욕구와 그것을 보는 기쁨을 줍니다. 미국의 유튜브나 트위터,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처럼 게시자의 나르시시즘과 방문자의 관음즘에 소구하는 서비스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있읍니다.
본질적으로 "시위"란 것도 이와 유사한 욕구에 소구합니다. 표현의 문제이기도 하고, 시선의 문제이기도 하고,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당연히 그렇습니다. 저널리즘도 크게 마찬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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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권력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론 반대도 가능합니다. Believing is seeing, 믿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지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읍니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이해입니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보는 행위와 지식의 구성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고래로부터 그래서 “눈”은 “지식”과 “이성”을 상징하지요.
어느 문화권에서나 절대 이성과 진리는 신의 영역입니다. 이집트 상형 문자에서 눈 그림은 신을 상징합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을 통제하는 하는 것이 지식이고 그 지식과 상호 통제적 관계에 있는 것이 권력입니다. 본다는 것은 크고 작고 간에 세상을 규정하는 권력 행위라 할 수있읍니다.
그래서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신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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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던 파놉티콘이니, 시높티콘이니하는 이야기들도 결국은 "Power of seeing"의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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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자유 발언대에 올라 "엄마, 보고있지? 나 어쩌구 저쩌구"하는 젊은 처자의 육성을 인테넷에서 접하고나서, 시위가 언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참 새삼스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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