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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역사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때, 그것은 차이, 그러니까 이질성이나 또는 유사성 정도를 기준으로 관련된 수 많은 현상들을 범주화 또는 개념화하는 작업 또는 능력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 예를 들어 저널리즘의 역사를 안다고 할때, 또 공부한다고 할때, 그것은 저널리즘과 관련된, 현상들을 수많은 과거사로 부터 골라내고, 분류하고 범주화, 개념화 하고, 그것들간의 관계성을 유추 설명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기위한 우리 삶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동태적 이해에 있다는 점에서 역사란, 보편적 동의가 가능한 일반화된 실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어야 하고, 일정 부분 그럴 수도 있지만.....선택과 범주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주관성과, 과거 설명의 준거가 되는  현재라는 것의 유동성을 고려할때, 역사에 관한 지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대한 것을 넘어 그것이 (재)구성되는 시점 즉 어떤 현재에 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 있어서 역사적 관점은 그 자체가 하나의 분석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관점 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기서 구성되다고 하는 것은 그 역사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현재 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1961년 발간된 그의 저서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펼치고 있는 신문 또는 저널리즘에 대한 역사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특정 시간과 공간의 현재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관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 모든 관점이 가지고 있는 그런 제한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57년이 지난 지금, 한국이라는 이곳의 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데 그의 역사관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 정도의 일반성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있을 논의는 일종의 연역적 접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관점을 하나의 가설로 받아 들이며, 그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데 얼마나 유효한지를 살펴 보는 거지요. 

계속 
by sodal | 2008/09/16 11:55 | 2008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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