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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단계, 포스트 저널리즘
신문, 사적영역의 한 가운데 구성된 공적 영역
변화 단계론에 대한 짧은 코멘트
신문 변천의 3단계
저널리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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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언론학 선생이 학생들에게 질문합니다.
자네들은 "신문"하면 무엇이 먼저 머리에 떠 오르느가?...
2007년 한국, 학생들의 대답은, 조중동, 종이, 여론조작, 신뢰, 짜장면 빈그릇 포장지......
1961년, 독일, 하버마스의 대답은................................."Public" (독어에 밝지 못해 죄송^^)
#무엇이 "퍼블릭" 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버마스는 신문과 저널리즘에 대한 그의 책(공론장의 구조 변동)을 시작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퍼블릭이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변화 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양하고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구요. 신문 또는 저널리즘 행위라는 것을 설명하는 기준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 퍼블릭, 퍼블릭적이 어떤 것을 말하는데, 그 레퍼런스의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통일되지 않은 거다 이겁니다. 그것이 기초라면서, 기초를 흔들어 버리니, 헷갈리는 거는 당연합니다. 근대적 생산물인 우리네 들의 의식은 이런 유동적이고, 통일적이지 못한 것들에 대해 막연히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안정을 희구하는 우리의 여린 마음을 흔들어 버리는 것이 분명 하버마스 적입니다.
#하여튼, 하버마스의 견해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공적성과 사적성간의 관계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공적이면서도 과거 즉 중세의 과시적 공적영역이 아니고 사적이면서도 순전히 사적 영역이지 않은 그런 것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근대적, 부르주아의 공적영역(공론장, 공론권) 입니다. 신문은, 저널리즘은 사적 영역의 한가운데서 성립된, 근대적, 부르주아적, 공적 의사 소통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이고.
# 부르주아 공론장의 구성은 어떤 의미에서 공과 사의 정반합적 결합에 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있습니다. 그가 명백히 의도 했건 아니건 간에, 결과적으로 하버마스는 공과 사의 개념을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상관적이고 가변적이며, 不一而不二적 사유에 근거 풀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동양적이기도 하면서, 상관적 차이로 세상을 인식하는 네트워크적 사유에 부합하는 관점이라고도 할 수있습니다. 물론 동양적 무위적 사유가 일부 탈 근대적 사유와 접점을 가지고 있고, 하버마스는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 탈근대의 무위적 양식으로 나타나는데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관점은 변화를 안정의 파괴가 아닌 어떤 지속적 경향성으로 이해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읍니다. 저널리즘의 현재와 변화을 읽어 내기위한 첫 걸음을 공적성과 사적성에 대한 상관적 사유에서 출발해보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