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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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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길’이 ‘장생’이 아닌 왕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좀 시간이 지난 얘기이긴 한데, 제가 국내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바 있는 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하고 나서 든 궁금증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저 개인의 질문을 넘어, 공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장생의 질문이기도 하며 동시에 영화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축이기도 합니다. 


왕을 선택한 이유가, 장생이 공길에게 줄 수 없는, 산해진미나 시답잖은 벼슬 때문이라면 너무 영화적이지 않습니다. 동성애도 사랑이니, 사랑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위의 영화적 개연성이란 차원에서는 역시 미진합니다. 어쨌든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영화 소개 공식 사이트에 가 봐도 ‘알 수 없는 이유’라고 돼 있더군요.


여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영화에는 없는 공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양반들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과 회한으로 가득한 삶을 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공길의 어머니.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기생질이기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을망정 그 짓으로 먹고살지만 공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양반에 대한 분노와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족쇄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왕과 공길 사이에는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짧게 줄여 소개했지만 사실 공길의 어머니 이야기는 제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의 창작물로 공길의 1인칭 독백 형식으로 된 글입니다. 영화라는 텍스트에 근거한 2차적 창작, 이른바 메타텍스트라는 것이지요. 텍스트를 있음직한 현실에 대한 묘사,  재현된 현실성으로 본다면, 이런 재현, 모사, 묘사된 텍스트에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의견과 상상이 결부되어 만들어진, 2차적 창조를 메타텍스트라고 할 수있습니다. 바로 이런 메타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장이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은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들의 매체입니다. 이런 2차 텍스트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3차, 4차 텍스트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 ‘왕의 남자’라는 원래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변형되고 보완되고 또 해체되기까지 하며 다른 이야기로 거듭나게 됩니다. 영화 “왕의 남자” 또한 연극의 각색이니 원전이랄 것도 없습니다. 2차적 글쓰기가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폄훼될 것은 아닙니다.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도 메타텍스트적 글쓰기로 유명하니까요.


인터넷의 2차적 글쓰기의 소재는 물론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엄마가 뿔났다,”와 같은 전통적 드라마는 물론 요즈음 유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들도 인터넷 메타텍스트의 좋은 소재들입니다. 이런 오락 프로그램들뿐만 아니라, 보도프로그램의 텍스트, 즉 뉴스 역시 또 다른 텍스트의 소스가 됩니다. 쇠고기 촛불시위에서부터 올림픽, 미국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회적 이벤트들에 대해, 1차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그것보다 더 많은 2차, 3차 텍스트가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메타텍스트를 위해 소비하게 되는 것이지요. 메타텍스트가 오리지널을 압도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사실, 1차, 2차, 3차라는 순서적 구분도 적절치 않습니다. 텍스트들은 의미의 재생산 네트워크 속에 모자이크처럼 놓여지게 되고 시작과 끝이라는 구분도, 원전과 차용이라는 구분도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그런 세상으로 우리는 진입하고 있습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되는 네트워크 소통 시대인 게지요.


소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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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al | 2008/09/29 18:59 | 2008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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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꿈꾸라 at 2008/09/30 14:19
저도 얼마전에 영화의 '오마쥬'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어요. 메타텍스트의 연장선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기만의 시각과 각색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꼈답니다.
메타텍스트. 네트워크 선상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삶을 연결하는 소통의 끈 이기도 할 것 같다는 저만의 생각입니다. :)
Commented by 돼지꼬리 at 2008/09/30 18:44
흠..예술의 메타텍스트는 개연성이 있다고 해도 허구라는 성격을 숨길수는 없죠. 그에 비해 블로그와 같은 오피니언에서는 비록 기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논리성과 정확한 팩트들을 중요시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의 텍스트를 새로운 텍스트로 재탄생시킨다는 데에는 분명히 공통점이 있지만 예술과 저널리즘의 조합이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참고로 저는 왕의 남자에도 관심이 없는, 예술과는 정말 거리가 먼 문외한입니다 ㅎ 그러나 문학에서의 메타 텍스트의 사례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읽게된 독후감에서 이 기법이 쓰였더군요. '소나기' 를 읽고 쓴 것이었는데 그 독후감에서의 화자는 바로 개울가의 징검다리였습니다. 개울가의 징검다리가 소녀와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수업을 듣고 나서야 그때의 그 감동적인 독후감이 메타텍스트 기법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된 1ㅅ이었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야옹 at 2008/09/30 20:59
메타텍스트라... 오늘 수업을 들으며 '메타'라는 것이 대세긴 대세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메타담론, 메타비평 등등.(갑자기 메타콘도 생각 나는군요. 쩝!) 저는 이번에 응시하지 않았지만 모 신문사를 지원했던 아는 분께서 촛불의 정치학과 경제학. 이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논술 문제로 출제됐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즉 메타담론을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 그 자체에서 더 나아가 발전된 생각을 펼치길 바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어떤 매체 혹은 글, 사건을 접하든 다른 현상과 연결시켜 열심히 연구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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