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화 이론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가 바로 기술 혁명론입니다. 20세기 정보사회론 역시 같은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1973)의 저자 다니엘 벨, 지식사회론(1969)의 피터 드러커, 제3의 물결(1980)의 앨빈 토플러, 메가트렌드(1981)의 저자 나이스빗 등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정보혁명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바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거칠게 묶어 정보사회론이라 부릅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핵심 테마가, 바로 "기술 혁명이 만들어 내는 발전"입니다. 물론 그중에서 백미는 맥루한입니다.
# 전자 미디어 (특히 TV)가 건설하는 지구촌 적 현상에 대한 맥루한의 관점은 낙관론적, 기술 결정론적 세계관이 주류였던 50-70년대의 커뮤니케이션 혁명론을 대변합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인간과 세상을 바꿀 것이라라는 생각은 맥루한이 처음은 아니죠. 1800년대 중반, 사회학의 아버지들로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이 세상을 실증적이고 기능적 관점으로 바라보기시작한 이래 세상의 변화에 대한 설명에서 "커뮤니케이션 혁명론"은 항상 논의의 중심에 있어왔습니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온 방식을 인식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없다.”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토가 될 만한 이 말은 사회학자 쿨리(Charles Cooley)가 1901년 발간된 그의 저서 “Social Organization”에서 한말입니다. 물리적 커뮤니케이션이 심리적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쿨리의 관심은 매체 발전을 인간(심리적) 확장과 연결지어 해석한 맥루한의 견해와 부합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맥루한이 TV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 만큼, 쿨리는 transportation에 관심이 많았지요. 그의 학위 논문 제목이 "The theory of transportation"였다네요. 쿨리는 그 유명한 시카고 학파입니다.
# 물론 19세기 유럽에도 쿨리의 선배뻘이 되는 사회학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실증주의의 아버지, 콩트의 영향을 받은 이상주의적 사회과학자 생시몽(Claude Henri Saint-Simon)과 그 추종자들(초기 사회주의라 할 수있는 공동체 주의에 심취한 생시몽 주의자들)이 대표적이라 할 만합니다. 이들은 "단절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개념을 최초로 공식화한 사람들로 알려져있습니다. 철도, 교통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출현이 갖는 도덕적, 사회적 결과를 연구한 사람들이었지요. 대표적 생시몽계열 학자인, 미셀 슈발리에(Michel Chevalier)는 그의 저서 "지중해의 체계"에서 "철도가 만드는 보편적 교류가 세상을 화해시키고 문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그것이말로 식물처럼 자라나 살다가 죽어갈 이들을 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바 있습니다 (아르망 마틀라르, 1992). 1800년대 중반을 산 그의 생각이 전자미디어에 대한 맥루한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말입니다. 약간은 이상적이고 약간은 낭만적이며, 일면 유치해 보이기도한 프랑스의 생시몽주의자들 이외에도 상대적으로 더 전투적 느낌이 있는 피터 크로포트킨과 같은 러시아의 무정부 주의자들도 커뮤니케이션 유토피아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네트워크가 인간의 유대와 보편적 동포애에 기반한 평등한 이상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지요. 이상적 커뮤니케이션 유토파아론자들, 예 바로 그 로맨틱 엑그자일....
# 이들 뿐 아니라 조금 확대해 말하면, 유기적 연결망으로서 사회를 설명하는 꽁트, 사회적 유기체 진화 발전론을 설파한 스펜서, 자살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행위를 사회적 요인으로 설명함으로서 최초의 사회이론가라는 명성을 얻은 뒤르껭은 물론, 네트워크 이론, 확산 이론의 선구자들인 짐멜, 타르드, 그리고 게만인샤프트, 게젤샤프트론으로 유명한 퇴니스 에 이르기까지 그 유명한 초기 사회학자들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던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사회관"을 계승하면서, 20세기적 정보사회론으로 변형된 것이 맥루한의 생각이라 할 수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확장시킬 것이고. 갈등을 축소하고, 문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혹은 그렇게 기능해야한다는 관점은 그 출발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적이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꽁트 등으로 대변되는 초기 실증주의 세계관은 분명, 지금의 관점으로 볼때 지극히 우파적입니다만, 역시 동시에 좌파적 무정부 주의자들 또한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맥루한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헤롤드 이니스(Harold Innis, "The Basis of Communication", 1951)나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Technics and Civilization," 1934)만 하더라도 분명, 1960, 70년대 냉전시대의 정보사회론자들, 우파 이데올로기의 전도자들, 예를 들어 후기 산업 사회론의 다니엘 벨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지요.
# 20세기 정보사회론이 태동한 시점은 냉전시대. 월남전의 시대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것이 좌우로 구분되던 시대입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보는 시각도 이념적으로 구분되고..... 맥루한은 스스로 의도 했건 아니던 간에 한쪽을 대표하는 인물로 분류되게 됩니다. 대중 전자 매체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문제 였던 거지요. (참고: 참여 개인의 확대, 인간의 확장-맥루한 )
#그리고 지금은 다시 50년이 지났습니다. UNESCO에서 커뮤니케이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ommunication)에 관한 국제적 논쟁이 있은지도 이미 30년이 되어 갑니다.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1995년)의 "Being Digital" 란 책이 나온지도 13년이 되었네요. 그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색안경을 벗고, 맥루한을, 커뮤니케이션 유토피아론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식의, 소박한 근대성에 대한 반성은....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한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일단 구분하고 보는것.....그런 전투적 이분법을 내려 놓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