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론에관한 포스트 서너게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복잡계에 관한 얘기도 나오고 했으니....우리논의에 필요한 복잡계 과학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할 수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좀 필요한것 같고해서... 작년 초에 쓴 글이긴 한데.....퍼블리쉬 된적도 없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기 블로그에 올릴려고....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좀 이른 느낌이 있지만.....참지 못하고 올립니다. 이제까지 글과는 좀 다르게 오피셜한 느낌이 나지만, 여전히 편하게 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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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VI-4세대 커뮤니케이션론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V-미시와 거시의 결합, 3세대 네트워크론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V-2세대 기능주의 적 네트워크론 [1]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II-사회의 발견, 사회유기체론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I-커뮤니케이션학의 사회학
프롤로그:
근대화 & 커뮤니케이션 혁명론, 커뮤니케이션 유토피아론
혼돈과 질서라는 파르마콘 & 근대성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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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변화의 역사적 근거를 고찰해보는 것은
그 열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 필요한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
# 프롤로그
현대를 설명하는 “근대성”이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했던 300여 년 전 유럽, 그 당시의 열정과 같은 것을 현재 우리가 다시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 근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집단적 열정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심대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열정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항상 커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동시대의 변화가 인류의 어떤 변화 시기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얘기할 때 항상 현재의 변화를 과장 또는 강조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지요. 이와 반대로 현재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경향성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마도 보수주의적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보수주의적이지 않고, 변화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해 말하길 주저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변화론, 미래 론을 저자거리의 상품처럼 팔아먹으려는 상인의 정신이 어딘지 어색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써 상인이지 않고자 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항상 회의적이고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는 그런 자세 때문에-그것이 바른 지식인의 자세라는 생각 때문에-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입안에서 웅얼웅얼 거리는 것으로 얘기를 끝내는 것입니다. 도대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죠. 도움이 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조금 여유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에, 그것이 비록 완전히 옳은 것을 아닐 지라도 어느 정도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소통을 위해 적절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제 생각입니다.
이 글은 점점 편재해가는 인식과 소통의 새로운 양식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하는,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낭만적 분위가가 배태된 그래서 분명히 황당한 그런 정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문명사적 논의”가 필요한 또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범위가 방대해 질 수 있는 그런 주제인 것 같습니다. 미천한 제 능력으로는 제대로 쓸 수도 없고 제대로 마무리하기도 어려운 그런 주제라는 것이죠. 그래서 쓰는 사람도 그렇고 읽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 즉 논의의 대상을 좀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글의 분량도 당연히 줄어들게 되고... 다행히도 요즈음 많은 분들이 “네트워크”론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평소 제가 그래도 많이 생각하던 것이 그것이니 거기서 논의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되풀이 말하면 포스트 제목에 있는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은 논의가 너무 산만하게 흐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략적 이정표가 본래 의도한 바를 지나치게 구속한다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면서, 조금은 목표와 어긋나더라도 하고 싶은 얘기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아니 분명히 있을 본 내용의 어느 부분과 제목의 연관성 없음에 대한 사전 변명입니다. 아, 그리고 여기 이후 포스트부터는 문어체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