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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V-미시와 거시의 결합, 3세대 네트워크론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V-2세대 기능주의 적 네트워크론 [1]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II-사회의 발견, 사회유기체론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I-커뮤니케이션학의 사회학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론 I-프롤로그
프롤로그:
근대화 & 커뮤니케이션 혁명론, 커뮤니케이션 유토피아론
혼돈과 질서라는 파르마콘 & 근대성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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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세대 네트워크론으로서의 복잡계 네트워크론
“개인과 구조”문제가 사회학의 골격을 이루는 한 축이라면, 이와 같은 정도로 중요한 또 다른 축이 하나 있다. 바로 안정과 변화, 통합과 분열, 합의와 갈등, 균형과 혼돈 등으로 표현되는 축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 사회이론은 기능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하나의 체계로 본다. 과학적 분석을 중시하고 사회가 방향성을 가지고 진화한다고 보는 것도 기능주의 자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기능주의자 파슨스의 사회 체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체계다. 파슨스의 그것이 안정과 순응 화합과 균형의 체계, 조화롭게 통합된 전체라면 마르크스의 그것은 변화와 분열, 갈등, 혼돈, 혁명의 체계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식(로버트 머튼이 말한 “필수 불가결성의 공리”)의 논의는 좋게 말해서 결과론이고 나쁘게 말해서 말장난이다. 머튼과 파슨스식 체계론이 본질적으로 체제안정과 순응을 가치로하는 반혁명적 관점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쯤해서 우리가 지금 말하려는 4세대 네트워크 론이 다른 네트워크 론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파슨스는 첫째 사회는 자율적 체계이고 둘째 그 체계의 모든 부분은 서로 연관되어있고 모든 것이 통합되어있으며 셋째 체계에는 안정을 유지하려는 기본 압력이 존재한다고 본다. 파슨스가 말하는 목표를 가진 통합은 결국 중앙 집중적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안정을 설명하는 데는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변화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 못하다. 특히 현재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틀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4세대 네트워크 론에서는 네트워크를 집중적인 것이 아닌 무정부 적인 것으로 본다. 이른바 아나키 네트워크다. 균형, 안정, 질서가 아닌 변화 분화의 네트워크다.
기능주의자 로버트 머튼 또한 사회가 본질적으로 일치와 통합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바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들은 “분극화” 또는 “까페화”라는 아주 새로운 경향성으로 상징될 수 있는 것들이다. 미디어가 그렇고 개인의 가치와 취향들이 그렇고 의견이 그렇고, 소비행동도 그렇다. 그 결과 여론이 실종되고, 다수 의견의 부재하고 보편적 행동이 소외화 되는 현실이다.
평화와 안정, 질서, 합의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 체계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갈등의 체제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분극화는 마르크스가 설명했던 것처럼 두 계급간의 발생하는 그런 단순한 것(노동자와 부르주아의 양극화 경향)은 아니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훨씬 더 많은 계급/집단 구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갈등도 양자간에 벌어지는 것과 같은 전투적인 것이 아니다. 갈등과 연대가 동시에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정치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을지 모른다. 좌파 이론가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또한 이런 갈등 전선의 중첩화 현상을 설명하려는 논의로 볼 수 있다.
포스트 모던(또는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 사회)은 이런 현상에 주목하면서도 그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줄 이론적 틀의 제시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런 노력이 바로 기능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사회를 전체로 보기보다 개개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들이다. 이들과 유사한 관점을 공유하면서도 사회를 체계로 보는 입장에서는 그 체계를 설명해줄 이론적 프레임이 필요하고 그런 프레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논의,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론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