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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가 언젠가 융합에 대해 포스팅 한적이 있습니다. 짧은 포스트이긴 했지만, 나름 Modularity 측면에서 이 포스트와 연결되는 되는 조각입니다. 이 포스트는 미디어 분극화에 대한 내용으로 미디어 융합/분화론과 연결된, 미디어 분화에 대한 또다른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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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TV에 한번 나오면 주위의 많은 사람이 알아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통 개인이 이용하는 매체가 서너 개를 넘지 않던 때였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고 기억합니다. 신문 인터뷰 한번 하면, 지인들로 부터 전화가 막 오고, 텔레비젼 뉴스에 나오면 더 난리고... 사람들마다 이용하는 매체가 비슷했고 읽고 보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랬습니다.
신문기사를 읽거나 TV 뉴스를 시청할 때, 나 이외에 다른 많은 사람도 이것을 접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때는 있었습니다. 시청자나 독자들 뿐 아니라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공통의 관심, 공통의 의제, 공통의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뉴스 매체의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보통 일곱에서 아홉 개의 뉴스 원을 이용한다는 보고도 있더군요. 뉴스 매체는 늘어나고 전체 뉴스 이용 시간은 줄어 매체 당 이용시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줄었습니다. 내가 접하는 뉴스와 네가 접하는 뉴스가 다른 시대입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존중되고 소통되는 사회가 민주사회입니다. 산술적으로 뉴스 매체가 늘어났으니 사상과 의견의 다양성 정도도 커진 것일 수 있습니다. 일면, 긍정적 현상이라 할 수있죠.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꼭 그런것 만도 아닌 모양입니다.
여기 두 개의 참고 자료 가 있습니다.
하나는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Red media, Blue media" 란 기사입니다. 경쟁이 만들어 내는 뉴스 미디어의 정치적 극화(Polarization) 또는 분화(Frgmentation)에 관한 기사입니다. 기사의 소스라 할 수 있는 관련 논문(ica-redmedia-bluemedia.pdf)도 읽어보면 좋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커뮤니케이션 교수입니다.
두 번째 참고 자료는 "Bad News"라는 제목의 NYT 칼럼입니다. 저자는 포즈너 판사입니다. 베커포즈너 블로그의 그 포즈너입니다. WP의 기사와 관련 논문이 하나의 현상에 대한 기술과 설명이라면, 그 현상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환경적 변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글이 포즈너 판사의 글 입니다. 미디어 학자도 아닌 양반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100대 지성이라더니만, 허명이 아님을 보여 주는 좋은 글입니다.
두 글의 공통점은 매체간 경쟁과 그에 따른 분화 또는 분극화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FOX 뉴스"라는, 문제가 아주 심각한 특별한 매체가 만들어낸 정치적 Polarization에 촛점을 두고 쓴 글들이기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관련 포스트)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쟁과 분화는 민주주의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경쟁이 분화(분극화)를 만든다는 기본 주장에는 동의 하면서도 분화 또는 분극화 현상 자체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하는 거지요. "미디어의 분화 혹은 분극화"는 잘못된 폭스만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화"를 인터넷 기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이 만들어 내는 분화의 매커니즘을 간략히 한번 정리해 봅시다. "폭스 뉴스"라는 누구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매체 이야기를 빼고 말입니다.
-매체의 다양화는 기술적 정책적 요인에 의해 시장 신규 진입 비용이 낮아진 결과다.
-진입 비용이 낮아진 만큼 신규 사업자들의 손익분기점도 낮아진다.
-낮은 손익분기점을 가진 매체는 일반 대중이 아닌 목표 대중을 대상으로 뉴스를 만들게 된다.
-시장 세분화, 서비스 차별화 전략이다.
-경쟁하는 매체가 적을 때는 다수의 중간 대중이 목표가 된다.
-객관적 언론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경쟁이 격해지면 소수 목표 집단만을 겨냥한 선명성이 중요해진다.
-다수 중간 대중을 목표로 할 때 뉴스메이커들은 스스로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뉴스메이커는 자기 정체성을 애매하게 만든다.
-Red 미디어인지, Blue 미디어인지, 좌인지 우인지, 진보인지 보수인지 불분명한 것이 좋다.
-반대로 소수의 차별화된 목표 집단에 소구하기위해서는 뉴스메이커 스스로 누구인지를 과장해 드러낼 필요가 있다.
-분명한 색깔을 가진 브랜드가 있어야 선택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빨간 미디어인지, 파란 미디어인지 분명히 밝혀야 하는 환경이다.
-한 미디어 기업이 색깔을 분명히 하고, 목표 대중을 선취하는데 성공하면, 그 성공은 시장의 다른 모든 뉴스매체에 영향을 끼친다.
-동일 매체 뿐 만 아니라 이종 매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중 매체 이용환경에서 모든 매체는 상호 경쟁 관계에 있기떄문이다.
-그냥 빨간 미디어, 푸른 미디어가 정도가 아닌, 새빨간 미디어, 새파란 미디어가 유리한 환경으로 변한다.
-여의치 않으면, 샛노란 미디어도 되어야 한다.
포즈너 판사의 견해를 참고하고, 제 견해를 덧 붙여 재 구성해 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특별한 사례라고 보입니까? 이것이 미국만의 사례라고 하기 어렵지 않을 까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저는 이 "분화 또는 분극화" 현상을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의 맥락에서 해석하기 보다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융합과 분화"라는 시스템 진화 차원의 해석입니다.
매체의 차별화를 단순히 경쟁의 결과로 보는 것은 단견입니다. 공급 측면에서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매체 차별화 현상의 기저에는 수요 측면의 변화 즉 "이용자의 변화"가 있음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용자 변화가 또 다른 주요한 요인 입니다.
이용자가 예전과 다릅니다. 서로서로 비슷한 동질적 이용자에서 이질적 이용자로 변화 하고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설명하면 동질적이면서도 분리되어(homogeneous but still unlinked) 있던 군중들로부터 이질적이지만 긴밀히 연결된 개인들 (heterogeneous but networked individuals)로의 변화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서로서로 다릅니다. 취향중심적인 개성 넘치는 네트워크 개인들이고 웹 2.0의 주인공들입니다. 열린 음악회의 무덤덤한 손님 관객이 아닌 송도 락 페스티발의 에너지 넘치는 주인공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매체 환경 변화의 독립변수 입니다. 과거와 같은 수동적 종속 변수가 아닙니다.
물론 기존의 수동적이고 일사분란한 생각과 행동에 익숙한 전통적 수용자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다수(majority)가 아닙니다. 누구도 다수(majority)가 아닙니다. 수용자 욕구 조사를 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수가 없는데서 다수의 욕구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동질적 다수가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1세기 적 현상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가치 판단을 뛰어 넘는 시대적 이행입니다.
매체의 경쟁과 이용자의 분화가 서로 조응하며 만들어 내는 결과가 매체의 분화, 뉴스의 분화입니다.
수요 측면에서의 이용자 분화를 시대적 변화로 이해한다면, 공급 측면에서의 매체 분화를 부정적으로만 해석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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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도 남는 문제는 있습니다.
"네가 접하는 뉴스와 내가 접하는 뉴스가 다른 시대"라는 문제가 그것인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Benkler의 "The wealth of networks" 7장을 참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Negri와 Hardt의 "Multitude"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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