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위란 것이, 즉흥적이고, 그때 그때 다른, 어떤 경향성에 지배 받지 않은, 매우 불안정한, 마음대로인 것 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좀.......생각해 보면......에... 인간 행위란게 보기에 따라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 할 것인가, 말 건가, 투표하러 갈 것인가, 아닌가, 이 사람과 사귈 것인가 말것인가, 결혼 할 것인가 말것인가,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거짓말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인가, 저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인가, 이 기사를 읽을 것인가, 저 기사를 읽을 것인가, 휴지를 길거리에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자살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과제를 제때에 제출하는가, 마는가....
과제를 제때에 제출하지 않았을 때는 대개 이유(reason)가 있습니다.....과제를 제때에 제출하지 않고서, "전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원래 늦게 제출해요" 이렇게 답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불가항력적인, 또는 예측 불가능했던 어떤 상황과 연관되어있을 겁니다. "갑자기 프린터가 고장났어요"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가게 되었어요" 등의 공식적 이유 부터, "어제 친구와 밤새 술을 마셨기 때문에" "요즘 너무 피곤해 숙제할 여력이 없어서" "공부가 싫어서" "다른 과제가 많아서" 등과 같은 감추어진 이유 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이유가 한두개가 아닐 수도 있고. 그래서 특별한 이유를 적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대체, 내가 왜 그런 거지?" 처럼.
학생들이 생각하는 주관적 이유(reason)가 과제 미제출이라는 행위를 유발한 객관적 원인(cause)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모든 이유가 원인이라면, 어떤 행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향을 끼 칠수 있는 수많은 예측하기 어려운 요인(이유들)들 때문에, 과제 제출이라는 행위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명해도 별 의미가 없는 복잡한 현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과제 제출은 그때 그때, 달라요~"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꼭 그런게 아닐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유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 행위란 것이 주관적 경험, 특수한 맥락과 관련된 것이고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일반화해서 설명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지요. Instable 하고 복잡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때 그떄 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50명으로 이루어진 클래스의 첫번째 과제에 절반인 25명이 과제를 제때에 제출하고 25명이 늦게 또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가정합시다. 제때에 제출한 25명을 A 그룹, 제때에 제출하지 않은 25명을 B 그룹이라고 하고, 다음 과제를 기한 내에 제출하는 학생이 A 그룹과 B 그룹 중 어느 쪽에 많을 지를 예측해 봅시다.
예측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그럼, 세번째 과제는 어떨 까요?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과제는?
아마도 모든 경우에 있어, A 그룹이 많을 겁니다. 그때 그때 다르지 않습니다. 상당히 Stable 하지요. 예측이랄 것도 없습니다. 만일 한번의 결과가 아닌 두 세번의 사전 정보를 가지고 예측한다면, 더 쉽겠지요.
개인적 차원에서 본다면, 첫번째 과제를 제때 제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계속해서 6섯번 모두 제때 과제를 제출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행위를, 집합적,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달라질 수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행위는 불안정 한데도, 집합적 행위는 안정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모든 경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Micro Instability, Macro Stability라고 부릅니다.
미시와 거시를 나누는 기준이 명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미시와 거시, 사회학에서 말하는 미시와 거시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두 가지 차원을 생각해 볼 수있습니다. 하나는 부분과 전체라는 공간적 차원입니다. 앞서의 예 처럼, 특정 개인의 행위가 아닌 집합적 행위를 논의의 대상으로 할때 일반적으로 "거시적" 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개개인의 행위가 분석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집합, 집단이 전체로 분석의 단위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반대는 "미시적"입니다.
시간의 범위도 거시와 미시를 구분할 수 있는 차원 입니다. 단기적이냐 장기적이냐 하는 문제죠. 물론 장기적인 것이 거시적인 것입니다. 특정 시점, 특정 순간의 행위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긴 시간 단위에서 일어나는 행위의 트렌드, 방향성을 읽어내려는 것이 거시적 시각입니다. 특정 시점의 행위는 불안정적이고, 그때 그때 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행위의 경향성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미시적 불안정성을 넘어서는 거시적 안정성이 없다면, 여론 조사도 불가능 합니다. 아니 모든 종류의 사회조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개인들 차원에서 본다면, 여론조사 답변이라는 것 자체가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개개인들의 투표행위라는 것도 그날 가봐야 알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락가락 답변의 집합적 결과라고 할 수있는 "측정된 여론"이 그날 가봐야 알수있는 행위들의 집합적 결과인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있는 것이 바로 이 미스테리한 "미시적 불안정성과 거시적 안정성"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위 뿐 아니라 물리적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시적으로는 불안정하면서도 거시적으로는 안정성이 나타나는 것은...
세차게 흐르는 물, 급류에 낙엽 100장을 띄워 보면 낙엽이 어떻게 될까요? 이리저리 움직이겠지요. 물에 떠내려가는 놈, 물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놈, 바위에 붙어 버리는 놈, 거슬러 올라 가는 놈, 뱅글뱅글 도는 놈, 별놈이 다 있지 않겠습니까? 그 불안정한 낙엽 각각이 10초 동안 어떻게 움직일지, 그 궤적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 까요? 아마도 정확히는 고사하고, 대충 예측하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이것이 미시적 불안정성 입니다.
그런데 한 10 분 정도 후 쯤은 어떨까요? 우리들은, 예측대로, 물이 흘러 가는 방향을 따라 원래 지점보다 아랫지점으로 내려가 있는 적지 않은 낙엽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정하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전체적으로 보면, 가야 할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지요. 이것이 거시적 안정성입니다.
끝으로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거시와 미시의 연관성 또는 그 둘의 통합적 시각에 관한 문제입니다.
"미시와 거시는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이니 하나는 불안정 하고 다른 하나는 안정적인 것이다."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넘어 가면 좋겠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미시적 불안정성과 거시적 안정성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미시적 현상과 거시적 현상을 구분해서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그 둘의 미스테리한 연관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것 같고...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복잡계 연구자들이 말하는 "창발적 질서"라는 것이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축척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창발적 질서" 라는 복잡계 연구자들의 주요 명제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미스테리한 연관성을 밝혀 줄 통합적 이해로 나아가는데 그들의 연구가 중요한 토큰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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