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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 이미지

지난주 영화 ‘그랜 토리노’를 봤습니다. 외로이 홀로 사는, 마초 성향이 농후한 외골수 백인 노인과 난민처럼 보이는 동양계 이웃의 갈등과 화해, 우정에 관한 이야기....머 그정도로 정리되는데, 흥행과 작품성 양면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입니다. 

인종주의적 관점과 표현이 거침없이 나오지만 종국에 드러나는 위대한 인간애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반인종주의적 영화라고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아니 사실은, 인터넷 평들을 훑어 보니, 일부가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게 칭송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개방된 문화인의 자세로, 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를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개인적으로 내게 그랜 토리노는, 매우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매우 불편했던 영화 탑텐에 들어 갑니다.

이 영화의 갈등 축에는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실 영화에 한국인이 직접 나오지는 않습니다. 나오는 사람은 동남아 어느 외진 지역에 살다가 종교기관의 도움으로 미국에 집단 이주한 ‘몽’족이라는 난민들이지요. 그런데 영화에서 이 몽족은 꼭 몽족이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인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말갈족이라 해도 괜찮구요. 듣도 보도 못한 몽족의 언어와 의상, 음식이 소개되지만 그것은 몽족이라는 소수 민족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동양성, 동양 같음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일 뿐입니다.





영화를 끌어가는 중심적 모티프는 주인공인 코왈스키란 노인이 겪는 한국전쟁 트라우마(상흔)입니다. 한국인의 전쟁에 개입해 상처입은 노인의 굴절된, 인종주의적 시선이 영화 전반부를 장식합니다. 중반부는 수줍고 나약한 동양 소년을 보호하고 훈육하는 엄한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리고 후반부로 가며 그것은 다시 학대받는 불쌍한 동양 이웃을 구원하려는 영웅주의적 시선으로 변합니다. 인종주의 시선이 영웅주의가 된 것이니 변화라고 할 것도 아니지요. 목숨을 내 놓았으니 영웅주의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당 천의 람보 류는 분명 아니지요. 비교를 하자면...헌신공양하는 성자 수준이랄 수 있겠는데...코왈스키의 초 현실적 초인간적 행위가 영화적 감동의 원천임은 분명합니다.  

노인과 몽족 갱의 갈등은 한국전쟁의 다른 버전입니다. 몽족과 한국 이미지의 중첩은 그래서 영화적으로 의도된 것입니다. 영화적 은유인 것이죠.

미국 관객이 영화 속 몽족을 한국인과 동일시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인은 몽족과 우리자신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구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아쉽게도 미국인이 볼 때 한국적인 것과 몽족적인 것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영화 대사에 나오는 것 처럼, 개를 먹느냐 고양이를 먹느냐의 차이 정도지요. 동족 갱에게 두드려 맞고 겁탈당하는 동양계 이웃을 향한 미국 노인의 숭고한 희생을, 그의 구원자적 헌신을, 감사하게만 생각되지 않고, 미묘한 이중적 감정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내가 피 구원자로 설정되어있는, 도움을 받아야만하는 나약한 몽족 같은 동양인, 몽족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인, 한국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장사꾼은 약과이고 인신 매매범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붕붕 날아다니는 무술인상은 그나마 긍정적 이미지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이지요.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 이미지가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한국, 한국인상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얼마 전 국가브랜드위원회 보고 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보고면 보고지 웬 대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거창하게 한번 노력해 보겠다는 뜻이려니 하고 이해하려합니다. 다만 기대해 보는 것은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닌, 좀 더 실속 있는, 전문가 냄새가 풍기는, 세밀하고 실제적 방안이 강구됐으면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 이미지를 개선할 방법이 무엇일까 그런 고민도 좀 하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전문가가 모인 위원회라고 하니 무엇인가 답이 있지 않을 까요?

어떤 대상에 대한 이미지란 것은 결국 개인이 접하는 문화 텍스트의 모자이크입니다. 그런 문화 텍스트의 중심에 영화가 있음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인 이미지를 개선하면 그것이 열 외교관, 백 외교관 노릇을 하는 것이죠.

몇 년 전 미국에서 단풍 가득한 공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한 미국 할아버지가 기억납니다. 내게 단풍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던 그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습니다. 한국에서 짧지 않은 청춘을 보냈을 그에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은 한국 이미지와 연결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랜토리노를 보니 이런 분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네요.

*"보수주의자인줄 알았던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놀랍다"는 영화 평이 있더군요. 이 영화가 보수주의적이지 않다면...머가 보수주의적인 것인지....내참....

* 서양이 우리를 바라 보는 바로 그 시각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히 유효한가 봅니다.

by sodal | 2009/03/30 18:39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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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루시드폴 at 2009/04/02 10:00
오랜만에 블로그 왔는데 새 포스트가 올라와 있네요 :) 그랜토리노 봤는데, 불편하다는 소달님 평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반하는 부분도 있고... 저는 조금 다르게 보기도 했거든요^^ 오랜만에 여러가지 생각이 가능했던 영화였던것 같아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인사 한번 드려야 하는데^^
Commented by 소달 at 2009/04/02 14:33
Hi^^
Commented by asteria at 2009/04/13 21:45
저는 아직 그랜토리노를 못봤는데, 포스트를 보니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비판의식 없이 텍스트를 수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ㅎ
Commented by 루싸 at 2009/05/07 14:11
"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 이미지를 개선할 방법" 현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발상이신데....

영화잡지에서 클린트이스트우드감독에게 동양인에 대한 폄하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뭐 이런 질문을 했더니, 자긴 오히려 그 문제를 비판하고 싶었다.
그런식으로 얼버무리는 답변을 봤었는데. 저도 영화보는 내내 어딘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도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영화는 진행이 리듬감이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체인질링도 그렇고, 밀리언달러베이비 뭐 이런 작품들도..

소달님 세계일보에 쓰시는 칼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자살문제를 인터넷 네트워크로 푸신 것도 좋았고...^^
Commented by Gabriel at 2009/10/23 23:01
nice s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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